본문 바로가기
소중한 하루

오늘 하루의 끝에서 만난 따뜻한 위로... 오늘은 이런날이지

by 만료전 2025. 11. 5.
반응형

오늘은 유난히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오전부터 쉴 틈 없이 이어진 회의와 보고, 그리고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들로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갔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어깨는 점점 굳어갔고, 눈은 뻑뻑하게 말라갔다.
그렇게 오후가 넘어가니 머릿속은 이미 하얘지고, 손끝은 무거웠다. ‘오늘은 꼭 정시 퇴근하자’고 마음을 먹었던 게 아침이었는데, 결국 퇴근 버튼을 누른 시각은 또다시 회사 불이 절반쯤 꺼진 늦은 시간이었다.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찬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하루 종일 실내에 갇혀 있던 탓인지 그 공기마저도 이상하게 반가웠다. 마스크 안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가 오늘 하루의 답답함을 조금은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가볍게 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는데, 평소 자주 연락하던 동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야, 퇴근했냐? 순대국 한 잔 하러 가자.”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오늘 하루의 피로를 함께 풀자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순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이야.’
집에 가서 밥 차려 먹는 것도 귀찮고, 혼자 숟가락 들고 있는 것도 왠지 쓸쓸했다. 그렇게 발걸음은 자연스레 동네에 있는 순대국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회사 근처에서도 꽤 오래된 식당이었다.
낡은 간판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불빛, 문을 열면 들려오는 ‘딩동’ 하는 종소리, 그리고 그 특유의 따뜻한 공기. 문 안쪽에서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식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맡는 순대국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한쪽 구석 자리에 앉자, 주인아주머니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퇴근했어요? 오늘도 순대전골?”
우리는 거의 단골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메뉴는 늘 비슷했다.

잠시 후, 보글보글 끓는 순대전골 냄비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국물에서 퍼지는 향은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는 듯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사진을 찍을 여유가 있었다.
“이거 괜찮게 나올 것 같지 않냐?” 하며 휴대폰을 꺼내, 냄비가 끓기 전 깔끔한 상태에서 한 컷 찍었다.

내가 찍은 사진: 순대전골을 기다리며

그런데 음식이 끓기 시작하고, 국물이 진해지며 순대가 살짝 부풀어 오르자 그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야기에 집중하고, 소주잔이 오가며 웃음이 터지다 보니,
그 다음 사진은 결국 남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국물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료와 나눈 대화는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 누가 또 실수했는지, 누가 오늘 기분이 별로였는지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런 대화 속에서도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요즘은 진짜 일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너 있어서 버틴다.”
그 말에 동료는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에이, 그런 말 하지 마라. 우리 다 그렇게 버티는 거지.”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 소리 속에는 피로와 위로, 그리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 있었다.

순대전골의 국물은 생각보다 진하고 깊었다.
들깨가루가 살짝 풀어진 탓에 고소하면서도, 뼈에서 우러나온 진한 육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몸이 천천히 따뜻해지고, 차가웠던 손끝이 서서히 녹는 느낌이었다.
밖에는 바람이 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춥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마음이, 그리고 오늘 하루가.

식당 안의 소음도 그저 배경처럼 느껴졌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건배!’ 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가요, 그리고 옆 테이블의 웃음소리까지도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이런 게 사는 거구나.’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사람과 함께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는 시간.
그게 요즘 같은 날엔 가장 큰 위로였다.

밥을 다 먹고 나오는 길, 공기는 조금 차가워져 있었다.
식당 유리창에 비친 불빛이 은은하게 흔들리고, 가게 앞 간판의 붉은 글씨가 밤공기 속에서 반짝였다.
“야, 내일 또 힘내자.”
“그래, 오늘은 그냥 푹 자자.”
그렇게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문득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아까 찍은 사진이 딱 한 장 남아 있었다.
김이 피어오르기 직전, 순대전골이 막 끓기 전의 평온한 순간.
그 한 장이 오늘을 완벽히 담고 있었다.
‘나중에 또 이런 날이 오면, 이번엔 꼭 다 찍어야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웠다.
회사에서의 고단함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잠시라도 웃고 떠들 수 있었던 그 시간 덕분에 내일을 버틸 힘이 조금 생긴 것 같다.
결국, 하루의 끝은 사람이다.
그리고 따뜻한 한 끼의 밥상.
오늘의 피로는 그렇게, 순대전골 한 냄비와 웃음 몇 스푼으로 녹아내렸다.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따뜻한 동료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반응형